자전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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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말, 자전거 역사의 시작

인류의 생활에 바퀴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부터였지만 자전거와 같이 보행을 돕는 역할을 하는게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이다.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뜨 드 시브락이 만든 셀레리페르(Celerifere,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란 의미)는 같은 크기인 두 개의 나무 바퀴를 나무로 연결하고 간단한 안장을 얹은 엉성한 것이였다.

발을 뗀채로 주행가능한 자전거의 등장

1817년 독일에서 카를 폰 드리이스는 앞바퀴를 움직여서 원하는 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 목제 두 바퀴 자전거를 만들어 파리에서 드라이지네 (Draisine)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량되어 호비호스(Hobby horse), 댄디호스(Dandy horse)라는 이름을 얻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모델들은 모두 발로 땅을 차서 움직이는 것으로 능숙한 이들이 겨우 10km 정도의 속도만 낼 수 있었을 뿐 실용성과 오락성 부분에서는 기대에 못 미쳐 대중적으로 보급되지는 못했다.

자전거는 193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대장간을 하던 커크패트릭 맥밀런의 고안으로 큰 진전을 보게 된다.

그는 좌우 2개의 페달을 밟아서 연결봉과 크랭크를 통해 뒷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를 만들어냈다.

증기기관차의피스톤을 움직이면 컨로드와 크랭크를 통해 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로 인하여 굴러가는 자전거가 태어난 것이다.

벨로시페드,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

벨로시페드,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는 1861년 파리에서 대장간일을 하면서 마차도 만들던 페이르 미쇼와 그의 아들이 앞바퀴에 페달을 단 미쇼의 나무 자전거 벨로시페드(Velociped)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이 되었고, 당시 달리기 쉬운게 나타났다며 크게 환영받았다.

또한 1861년 2대, 62년 142대에 이어 65년에는 400대가 팔려 대량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바퀴 둘레에 철판이 씌어졌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라이더에게 너무 심하게 전달되어 본쉐이커 (Bone- sh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바퀴에 통고무를 쓰면서 승차감이 좋아진 것은 물론 속도도 빨라 졌다.

1860년대 후반에는 이 모델을 이용한 첫 레이스가 열렸고, 첫 번째 자전거 쇼도 파리에서 열려 앞선 기술들이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미쇼의 자전거로 스피드를 추구하게 된다.

자전거에 스타일을 더한 빅휠, 오디너리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Big wheel) 또는 오디너리(Ordinary)로 불리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굴림바퀴의 지름을 크게 하면 같은 한 바퀴 회전이라도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타이어는 역시 통고무를 써 빠르고 승차감이 좋으며 스타일도 멋있는 자전거였다. 오디너리는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크게 환영받아서 자전거 경주를 큰 인기스포츠로 끌어 올렸다.

빅휠, 오디너리의 약점은 안장이 너무 높아 타고 내리기 힘들고, 앞바퀴가장애물에 걸리면 탄 사람이 앞으로 곤두박질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결점을 없애면서 새로 나타난 것이 세이프티(Safety 또는 Safety-bicycle)다.

안전성을 고려한 자전거 디자인 등장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슨은 같은 사이즈의 크지 않은 바퀴를 달고, 앞바퀴페달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있는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요즘의 자전거와 비슷한 세이프티를 처음 내놓았다.

안장에 오르내리기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도 않은 안전한 자전거라는 뜻이다.

1885년, 오디너리를 만든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인 존 스탈리는 세이프티 프레임을 다이아몬드 형에 가깝게 하는 등 구조와 메커니즘에서 요즘 자전거의 기본요소를 모두 갖춘 로버(Rover) 자전거를 선보였다.

로버 세이프티로 발전한 자전거는 1888년 영국의 존 던롭이 발명한 공기 타이어로 더 한층 편하고 잘 달리는 탈것이 되어 현대 자전거의 기틀이 되었다.

당시 1880년대와 90년대는 자전거의 황금기였고, 여성들도 다투어 자전거를 탔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데서 얻은 자유는 영국에서 여권운동이 크게 번지게 한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자전거는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자전거 클럽이 생기고 여러 나라에서 이름난 레이스를 비롯해 크고 작은 레이스가 열리면서 자전거 타기는 열풍처럼 번져나가 장거리 여행도 이루어졌다.

소재와 기술 또한 크게 발전했다. 알루미늄과 티타늄 등 새로운 경합금 소재를 이용하면서 프레임과 변속기, 림과 타이어 등에서 신기술이 꾸준히 개발되었고 품질도 좋아져 자전거 성능은 계속 높아져왔다.

우리나라 자전거 역사

개화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자전거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개화기였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고휘성(高羲誠)이 1896년에 장안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다닌 것이 처음이라고 하고, 같은 해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현장에 갈 때 처음으로 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자전거를 '괴물차' 혹은 '나르는 새' 라며 신기하게 여겼다고한다.

그 후 약2년이 지난 1898년에 윤치호(尹致昊)가 하와이로부터 도입해 왔는데 이것이 두 번째다. 통 타이어를 사용한 이 자전거는 매우 엉성하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굴곡이 많은 길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이 자전거는 심지어 '자행차(自行車)' , 또는 '축지차'라는 별명까지 생겨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츰 한 대씩 들어오게 되었는데, 1903년 가을에는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1백대의 자전거를 도입했던 것으로 보아 자전거의 인식이 호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그리고 운반 수단으로 그 사용이 크게 늘어났으며, 대표적인 자전거도시는 경상북도 상주이며, 이곳의 자전거 역사는 1910년부터 행정의 효율성을 돕기 위하여 각 면에 자전거를 보급하게 된 것이 시초였다.

이때 보급된 자전거는 주로<라지>와 <후지>자전거가 주로 보급되었다. 자전거의 크기는 28인치로 한국 사람에게는 높아서 타기가 힘들었다.

당시 자전거의 가격은 약 30원(쌀1가마니가 3원이므로 10가마니 가격)이나 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또한, 1928년경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던 이용설은 여가 선용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전거 제조는 수리용을 주로한 부품의 생산에서 시작되어 1950년 후반에 이르러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1994년도에는 118만6천4백대를 생산하여 세계주요 자전거 생산국이 되었으며, 차종도 실용 중심에서 레저용 등으로 다양화 되었고 수출도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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